작품명 |
PASTORAL COU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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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도쿄도 토시마구 메지로(東京都豊島区目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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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
시바타 토모히코(柴田知彦 Tomohiko Shibata・SKM設計計画事務所 + 柴田いづ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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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도 |
공동주택(기존 3호+증축 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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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우스니쿠라멘구조(薄肉床壁構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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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기간 |
1990.11~19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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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기간 |
1992.1~19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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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
지하1층 지상4층 |
부지면적 |
58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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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면적 |
303.86㎡(증축 174.31㎡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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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적 |
835.30㎡(증축 496.56㎡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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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폐율 |
52%(70%) |
용적율 |
8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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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지구 |
제1종 주거전용지역, 제1종 고도지구, 준방화지역 |
Pastoral Court는 메지로역(JR目白駅)에서 메지로 거리를 따라 도보 12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번잡한 메지로 거리에서 한블럭 주택가로 들어가서 푸르른 가로수, 정원 조경들을 보며 느릿느릿 걸어서 가는게 더 좋은 주택가에 입지하고 있다.
(근처에는 Tokugawa Village(2016/07/11 - [일본의가로경관] - 쇼토(松濤) 등 - 일본의 일상풍경(3), 메지로 숲, 누구집인지 모를 정원 조경이 눈에 띄는 민가 등이 산재해 있다.)
그렇게 잠시 걷다보면 4~5층 높이의 나무들이 우거진 주택가 도로 모퉁이에, 지어진 지 시간이 좀 흘러보이는 아담한 흰색 건물, 넝쿨로 몸을 감싼 건물, 그리고 지은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사암으로 마감된 벽과 투명 유리 스크린 현관, 그 안 쪽으로 보이는 감색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이 인상적인 건물군을 맞딱드리게 된다.
보안상 외부인은 들어갈 수 까지는 없었지만 투명한 유리 현관이 시각적으로 외부의 가로와 연속시키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보인다.
주위의 주택가 환경을 고려하여 외부를 향한 외벽이 흰색으로 마감된 반면, 중정측의 외벽은 담쟁이 넝쿨과 푸른 하늘과 어울리도록 감색의 선명한 색채로 강조되어 있다.
지어진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1기의 건물, 그 이후의 2기, 그리고 1993년에 지어진 3기의 건물군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용한 주택가 가로환경에 물리적, 심리적으로 깊이감을 더해가는 느낌은 건축주와 건축가에게 고마움까지 느끼게 한다.
허용 바닥면적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기존 건물의 세 세대(世帶)를 포함한 여덟 세대는 중정의 계단을 통해서 직접 액세스하도록 되어있다.
평면을 보면 각 주호는 모든 주호의 실내공간으로 살펴보고 싶을 정도로 메조넷을 메인으로 보이드 공간, 로프트, 갤러리, 일본식 방 등등 각기 다른 평면으로 계획되어 있다.
부지는 높이 제한 10m의 제1종 주거전용지역으로, 최대한의 천정고 확보 및 4개층의 슬래브를 만들기 위해서 우스니쿠(薄肉, 편평) 라멘 구조를 채택하였으며, 일부는 2m 정도 반지하화 되어있다(선룸, 광정 등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부마감은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인상공간(印象空間)"이 형성될 수 있도록, 쥬라쿠(聚楽, 교토를 중심으로 발달한 벽 마감기법 중에서도 최고급 마감재료)와 소나무 거친 판, 다듬지 않은 석재 등, 정서적이면서 소재감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재료가 이용되어, 이들 소재에 의해 거주민의 기억을 이어가면서도 바깥 거리의 풍경과의 관계를 축척해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녹음이 무성한 메지로의 전원 풍경을 떠올리면서 "PASTORAL COURT"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경관 자산과 공공성.
공공성(公共性)이란 용어가 상투적이 되 버린지 오래다.
거의 사어로 되어 버린 것 같은 이 용어가, 다시 거리(街並み)와 경관(景観)의 개념과 함께 언급되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전후 일본이 어느새 빠져 있었던 "자신만 좋으면 된다"라는 식의 (개발) 방식으로 밀어부치려해도, 많은 곳에서 한계를 느끼게 된 것과 일치한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좁은 시야 안에만 머물러 있서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질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게 되어 왔다는 의미다.
세계가 상호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성립하고 있는 것 처럼, 그리고 그 존재만으로 영향을 줄 정도로 커져버린 일본이라는 국가가 「공헌」과 「개방」 이라는 방식으로 세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의무와 필요가 요구되고 있는 것처럼, 건축과 도시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건축과 도시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건축물에서 얻어지는 만족은 공간이나 투자의 고밀도화가 진행되는 오늘날의 도시에서는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개개의 토지나 건물에게 있어서, 주변을 포함한 경관적 자산 가치의 증대나 상실이, 그 자체 토지나 건물의 자산 가치를 크게 좌우한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면, 건축과 도시의 상호 의존성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인식할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경관 형성의 문제는 이제 세상의 경제 활동과 연결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언급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이해와 동의를 얻기 쉬워진다는 것에 주목한다면, 거리나 경관을 고려한다는 것은 자산 가치의 유지 및 증대와 관련된 경제 활동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고도 경제 성장기의 경제의 파이가 급속하게 팽창하는 과정에서 쉽게 부를 축적하는 것처럼 발생하는 이른바 '시세차익'에 의존하는 토지본위 경제와는 다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해서만 자산가치의 유지 및 증대를 도모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그것이 커다란 변혁이었다 하더라도, 도시의 내일을 생각할 때, 오히려 든든한 상황이라고 할 수있다.
비관론으로부터의 탈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어떨지싶다.
덧붙여, 사회 발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도 눈을 돌릴 여유를 가지고 시작한 것과, 글로벌 환경 문제가 일상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는 것 등과 함께, 사람들의 생활 수준의 향상이나 만족의 추구에 있어서 거리나 경관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 조건이 되어 가고 있다.
공공성이 대두되어지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가치관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당연히 건축의 존재 가치관에도 변화가 요구되어 진다.
이제는, 어떻게 자극적이라 하더라도, 건물 내부의 목적 밖에 기능하지 않는 건물이나, 내향적이거나 자폐적 논리의 결과, 다른 것과의 연속성, 상호 의존성을 거절하는 건물은 더 이상 지지되지 않을 것이다.
쾌적한 도심 공간의 창조, 공공성 있는 공간의 창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건축물은 급속하게 그 존재 의의를 잃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경관적 자산 가치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등의 평가 기준을 중요시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요즘 강하게 느끼고 있다.
재고(stock)로서의 건축과 도시의 고유성.
도시는 실체다.
우리의 도시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그 사실을 제대로 응시하자.
원래 도시란, 건물이나 거리 등과 같은 물리적인 부분과, 인간의 활동이라는 역학적 부분으로 성립되고 있다.
매일 매일의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그 실체로서의 측면이 점점 顕在化되어 간다.
주변의 거리나 도시의 모습을 보면, 예전에 비해 그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받는다.
물리적인 부분의 축적이 적을 때는, 인간의 활동 부분이 주목되어, 혼돈(카오스)에 비유되어 지기도 한다.
한편, 인간의 활동을 능가할 정도로 물리적인 부분의 축적이 증가하게 되면, 보다 더 실체적으로 보여지게 된다.
최근 도쿄나 다른 대도시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유럽의 제도시가 풍기는 냄새와 비슷해진 것 같이 느끼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한편, 수는 적지만 오래된 거리(古い街並み)를 전쟁의 화마나 전후 경제 부흥발전의 혼란 중에 잃지 않은 소도시는, 그 실체성에서 그들의 도시와 다르지 않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도시는 축적(stock)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활동(flow)이 그 배후에 숨겨지게 됨으로써 그 고유성의 성격 형성이 이루어지고있다.
앞으로 형성되는 거리나 경관을 생각할 때, 근대산업의 표준성· 대량 공급성으로 인해 모두가 유사해져, 무성격으로 밖에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경제 활동이나 사회 활동에 의한 투자의 선택지는 다양하며, 실제로 내가 위탁을 받아서 하는 경관 형성을 계획 할 때의 선택지도 다양하다.
그리고 도시든, 건물이든, 한 프로젝트 한 프로젝트의 모든 계획은 그 다양성 속에서 몇개 대안의 제한된 방향으로 밖에 선택할 수 가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제한된 방향이 어느 정도 공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그 시간축의 연장선상에 다른 도시와는 다른 거리의 분위기가 태어나고, 고유성이 형성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도시와 건축의 재고(stock)성을 높이는 것은, 표현을 달리하면 시간의 요소를 어떻게 짜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시간」이란 계승해야 할 것을 가진다는 것이다.
본래 그 사람 자신이 자란 독자적인 환경과 역사에 의해 개개인은 고유성을 갖게 되는 것처럼, 도시도 독자적인 성장 환경이나 역사, 바꿔말하면 독자적인 도시 자신의 이야기가 필수적이다.
불행히도 지금의 우리들의 도시에서 건축이나 거리 풍경 · 경관을 계획하고자 할 때, 그러한 독자적인 도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드물게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라도 기대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싹을 피우기 위한 도전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도전해 본 새로운 시도가 더 발전할지 어떨지는, 그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계승하고 싶은 共有性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를 것이다.
예정되어진 전개대로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로 공유할 수 있는 테마를 찾아 顕在化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꽃밭에 씨를 뿌리는 희망과 기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Pastoral Court 집합주택은, 극히 사적(私的)이면서도 거리 풍경의 형성에 깊이 관여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시바타 토모히코 (柴田智彦) 설명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