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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 도시주택/1980~

도시라는 지형 위의 주거 - GAZEBO / 山本理顕(야마모토 리켄) / 1986

by protocooperation 2015. 10. 28.

작품명

GAZEBO

소재지

 神奈川県横浜市(Kanagawaken Yokohamashi)

 

설계

山本理顕計画工房(야마모토 리켄)

설계기간: 1984.7~1985.3

공사기간: 1985.4~1986.3

주요용도

 전용주택 + 점포/사무소 + 아파트

규모

지상4층

부지면적

229.03㎡

면적

210.58㎡

면적

664.60㎡

 

 

건폐율

-%

(100)%

-%

(400)%

지역

상업지역4고도지구방화지역



요코하마시 카나가와구 이즈미쵸(横浜市神奈川区泉町)



남측 정면 상부를 바라봄


도시라는 지형

점포+전용주거+아파트+임대사무소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건물이다.

통과 교통만을 위해서 계산된 폭의 도로와, 그 도로에 면해서 계획된 소규모의 건물.

그 전체적인 풍경이 일본 도시의 일반적인 경관이라고 해도 해야할까하는 그 정도의 흔하게 볼 수 있는 복합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궁핍하다'라고 하면 어딘가 어폐가 있고 풍경전체가 무언가 낯설게 여겨진다고나 할까, 위화감이 응어리져서 속을 거북하게하는 그런 기분이다.

이 복합건물이 서 있는 가로(街並み)의 전체가 그런 풍경이다.


북동측 육교에서 바라봄


그런 풍경이란, 이 건물 주변의 도시풍경만이 아닌 하나의 전형으로서 환상7호선(環状7号線, 도쿄23구 주위의 환상형 간선도로 중 하나)이나 환상8호선(環状8号線), 또는 코슈가도(甲州街道, 니혼바시에서 신주쿠-하치오우지 등 서측으로 연결된, 에도막부시절 정비되어진 5대 가도 중 하나)라던가, 오직 통과교통만을 위해서 정비되어진 도로의 가로경관이라는 것은 일본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을 말한다.


그리고 트럭이 시끄럽게 다닌다느니, 배기가스가 어떻다느니, 소음이 어떻다느니 말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거리가 조성되어지는 방법에 위화감을 느끼고 만다.

정착해서 삶을 영위하기에는 어울리지않는 도로, 그런 도로에 의해서 저쪽과 이쪽이 단절되어 버리는 거리가 되어버리고, 그런 도로를 메우는 건물과 건물들의 기묘한 획일성과 그러면서도 서로가 어울리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산다>라는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이토록 피부에 와닿는 감촉에 이질성을 느끼게하는 거리풍경도 없다고 생각한다.

<산다>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원칙에 의해 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 원칙이 어떤 원칙에 의해서인가는 잘 말할 수는 없지만, <산다>라는 원칙과는 아주 관계가 먼 원칙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면도로를 향한 남측전경


눈부신 커튼월로 둘러싸인 고층건축물들, 또는 신주쿠(新宿)나 시부야(渋谷)와 같이 초집약적소비지대(超集約的消費)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도시적풍경인 것이다.

 

아니 <산다>라는 것으로만 본다면 그 <산다>라는 이미지에서 그렇다고 아주 분리된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살기>위한 장소로 계속 유지되는 이중성이, 도시의 풍경을 대표하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이중성이라는 것 자체가 도시라는 개념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또는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산다>라는 개념과는 먼 원칙으로 만들어진 것에 극한으로까지 가깝게 사는 것이야말로 도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북동측 보도에서 바라봄


이번 계획은 그런 가로풍경에 세워진, 그런 가로풍경에 어울리는 그런 복합건물이다.

복합건물이라는 것은 <살기>하기 위한 장소와, 그 외의 <살기>와는 관계없는 장소가 무관계인 채로 혼재되어 있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살기>하는 쪽에서 보면 <살기>와는 관계없는 기능은 전면의 간선도로라던가, 거리풍경이라던가, 위에서 도시적이라고 일컬은 그 쪽에 속하는 장소로서 여길 것이다.

이 건물에 한해서 말한다면 저층부의 점포나 임대사무실, 그리고 임대아파트도 모두 원도시적(原都市的)인 원칙에 의해서 지어진 것의 일부인 동시에, 그러한 기능의 위에 <사는> 장소가 얹혀져 있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지형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라는 지형 위에 <사는> 장소가 얹혀져 있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말을 하고나니 <산다>라는 것이 특권적이고, 배타적인 것을 그 내부에 품고 있는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특권성이 도시적인 것을 배제하려고하는 것 같다.

이 거리풍경에 위화감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살다>라는 시점이 가지는 배타성의 표출이 아니가 싶기도하다.

그 배타적인 눈이 반대로 도시라는 것을 위화감있게 만들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건물 정면에서 위를 바라봄


아주 최근까지 <산다>라는 시점 또는 상황이, 주택이라는 건축을 설명할 때의 유일한 정의였다.


예를들면 그것이 얼마나 특이한 주택이라 할지라도 그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특이한 거주방식만 명쾌하다면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는> 것과 건축과의 인과율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양자의 관계만 명쾌하게 하면 그것이 얼마나 평범함을 벗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설명수법이 아주 유효성을 잃어버려 결국 <산다>라는 개념 그 자체도 빛 바래져 버린 것 같다.

 

확실히 인과율 그 자체는 설명의 수법으로서의 유효성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해서 <산다>라는 것으로부터 건축이 자유로와진 것은 절대 아니다. 주택이라고 하는 것이 건축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진 것 뿐이다.


남동측 코너


<산다>라는 것을 철저하게 희박한 것으로 하려는 작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은 그저 단순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오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산다>라는 시점이  그 자체가 공중에 붕 떠있는 상태로 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약간의 가능성은 남겨져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다>라는 사상(思想)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것 보다 더 단단한 것이다. 단단하다는 것은 하나의 사상으로서 단단하다는 것이다.


1층 진입부



계단실을 외부에서 바라봄.


상황적으로 분명히 <산다>라는 것은 인과율의 원인 밖에 없다.

<산다>라는 상황이 사전에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것이 공중에 붕 떠있던, 어떻게 매듭지어지던, 중요하지는 않다.

어차피 건축 쪽에서 핑계좋게 날조되어진, 뭐 그정도의 상황 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황으로서가 아니라 사상으로서, <산다>라는 거의 무의식의 사상에 우리들은 일상이 철저하게 구속되어있다.

도시적인 것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도 도시라는 지형이라고 태연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이 <산다>라는 사상에 푹 빠져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각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 복합건물도 그렇지만 당분간은 <산다>라는 사상과 나란히 달려가면서 설계해나가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야마모토 리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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