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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주택)건축가

이즈미 코우스케(泉幸甫, IZUMI Kousuke)

by protocooperation 2016. 5. 6.

이즈미 코우스케(泉幸甫, IZUMI Kousuke, 1948~)


니혼대학 홈페이지(http://www.arch.cit.nihon-u.ac.jp/staff/izumi-kosuk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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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47년 쿠마모토현(熊本県) 출생.

1973년 니혼대학 대학원(日本大学大学院) 석사(修士)수료.

1977년 이즈미건축연구소(泉建築研究所) 설립.

2007년 치바대학 대학원(千葉大学大学院) 박사(博士)수료.

2008년~ 니혼대학 생산공학부 건축공학과(日本大学生産工学部建築工学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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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수상

1987년 「히라츠카의 집(平塚の家)」 카나가와현(神奈川県) 건축콩쿠르 우수상 수상.

1999년 「Apartment 덴(傳)」 도쿄건축상(東京建築賞) 최우수상 수상.

2004년 「Apartment 쥰(鶉)」 일본건축학회 작품추천작(日本建築学会作品選奨) 수상.

2009년 「소카센베 정원(草加せんべいの庭)」 소카시 가로경관상(草加市町並み景観賞) 수상

2012년 「쿠와나의 집(桑名の家)」미에현 건축상(三重県建築賞) 타무라상(田村賞)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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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저서

「건축가의 마음속 풍경1 이즈미 코우스케(建築家の心像風景1 泉幸甫)」 (작품집)

「건축가가 짓는 이상적인 맨션(建築家が作る理想のマンション)」

공저 「실천적 집짓기 학교 - 자기만의 무기를 들고(実践的 家づくり学校 - 自分だけの武器を持って)」

공저 「일본주택 디자인 방법(日本の住宅をデザインする方法)」

공저 「주택작가가 되기 위한 노트(住宅作家になるためのノ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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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http://www.izumi-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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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즈미상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도시에 주거건축을 설계한다면, 

우리나라의 일반 주택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국적을 떠나서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사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보편성을 어떻게 표현해 낼까 가장 궁금한 건축가 중의 한 분이다.


건축토론 대담 『이즈미 코우스케(泉幸甫) X 핫토리 미네키(服部岑生)』

(일본 건축학회(日本建築学会) WEB 건축토론 - 건축가 자택 시리즈 이즈미 편. 要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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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묵혀두었다 1시간 만에 설계.

服部:지금까지 어느정도 설계를 해오셨는지요.

泉:독립한 후 35년 동안, 설계는 전부 200여건 정도 될것 같습니다. (단독주택 170여건 정도. 그리고 기타 등등.) 


服部:이즈미씨의 베테랑 건축가로서 활동해 오신 35년간의 건축에 대한 생각과 경험은 자택의 설계에 어떠한 방법으로 영행을 미쳤는지요.  

泉:토지를 구입하고 나서 실제로 지어 올리기까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항상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도면을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집을 짓는데 정신을 쏟느라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내 집을 짓는거니까 언제해도 좋지 뭐." 라는 생각으로, 뒤로 미루곤 했던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나고 나서 어느날 뒤돌아보니 어느덧 예순살이라는 환갑을 맞이하게 되고(웃음)..

「하루라도 빨리 지어서 들어가 살지 않으면 손해!」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커다란 플랜을 그렸습니다.


服部: 토지를 구입하고는 그렇게 세월이 흘렀으니까, 여러가지 재검토가 필요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1시간 정도에 설계를 했다구요?

泉:네.

...(전략) 노후의 부부 둘 만의 삶의 방식이라든가, 등등에 대해서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기도 합니다. 

1층에는 어떤 어떤 방을 두고, 2층에서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라고 염두에 두면서,  이렇게 저렇게 그림을 그려 보니까, 어느새에 다 그려져 있더군요.

머리 속으로 생각한 것은 1시간 정도였을까.

(후략)...


服部:(자택이니까)지금까지 실현하지 못했던 꿈을 여기에 실현해보고자 한다던지, (자택이니까) 화제작을 한번 만들어 봐야지..하는 것이 없었으니까(웃음).

泉:지금까지 숱한 경험을 겪어오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게 좋아"라고하는 것은, 건축설계를 35년간 해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망설임없이 나와버린 것 아닌가 싶군요.


너무 건축설계라는 것을 까다롭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고 봅니다.

어렵게 생각하다보면 더 이상한 결과물만 나와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 속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而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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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静謐)한 공간.

服部:이 전에 사시던 곳은, 어던 곳이었습니까. 

泉:맨션이었습니다. 

좀 좁았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그 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질질 끌면서 살아왔죠.


服部:그러면, 맨션 생활에서의 탈출이, 설계 테마였겠군요(웃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했는지 알고싶네요. 

泉:우선 배치입니다.

건폐율이나 용적율 측면으로 생각하면, 이 부근에 정원을 만들고, 정원에 면해서 일본식 방(和室)하고 피아노실을 두고, 그리고 현관이랑 물쓰는 공간(水周り)을 배치하고, 북측에는 차고를 두고...

그리고 2층에 올라갈 때는, 나이가 들어서 올라가기 힘들면 안되니까, 홈 엘리베이터를 두고. 간단했습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이야기가 재미없어 지는 것 같군요(웃음).


服部:네, 재미없습니다(웃음). 

흔히 「건축가들은 자택설계를 계기로 다음 단계로 뛰어오른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泉:그런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단,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 같은, 그러니까 공간의 질을 어떻게 하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은 있었습니다.


이 집을 설계하면서 추구한 것은 정밀(静謐)한 공간이었습니다.  


조용히, 차분하게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자기 집을 짓는 것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설계를 할 수 있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산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산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산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면에서 자유였죠.

하지만, 자유롭게 설계하다보니까, 점점 예산이 부풀어 올라버려 나중에는 건축비가 부족해 곤란했었습니다.(웃음)

뭐, 그러다 치더라도 항상 해오던 설계와는 다른 자유가 있었던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服部:이 자택에는 엄선된 고가의 재료가 사용되었고, 공법적으로도 상당히 시간과 노력이 들어 보이는 곳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泉: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곳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역시 보통보다 비쌌던 것 같습니다. 

服部:일반인이 보면, 잘 모르는 곳에 비용이 든 것 같습니다만,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한 것인지요.

泉: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좋은 소재를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면 자기 집에도 사용하고 싶잖습니까. 자금은 부족해도 사용하고 싶은.

그래서 점점 늘어나다 보니까 건축비는 처음 생각했던 예산의 2배가 되어버렸습니다.(웃음) 

服部:상량식(上棟式)때, 뼈대 상태의 구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우선, 소재 그 자체가 엄청 고급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천정이 엄청 복잡한 구조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저건 나중에 어떻게 될런지, 상당히 걱정스레 봤던 기억이 납니다.

泉:그런 복잡한 형태가 됐던 것은 부지형태가 변형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각형의 토지였다면, 그렇게하지 않아도 됐었습니다. 하지만, 부지의 형태에 맞춰서 할 수 있는한 지으려고 하다보니 그런 복잡한 모습이 되버렸습니다.

服部: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일반적인 디자인의 경우, 그렇게 돈이 든 곳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에서는 겉으로 감싸고 있는 등딱지 같은 것으로, 가드가 단단하게 안을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泉:일반 통행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웃음)

服部:고상하시네요~.

泉:(제가 겉으론 이래 뵈도) 속은 고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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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함께 일해왔던 현장 목수 장인 동료들의 눈을 만족시켜야.


服部:이즈미상이 자택을 설계하신 것은 60세가 지나서지요.

지금까지 이즈미상이 만나 온 건축주들 중, 비슷한 연세의 분들은 역시 이와 같은 비슷한 생각의 모델이 됩니까. 

泉:타인의 주택을 설계해 온 건축가로서, 의뢰한 분에게 맞는 건물, 의뢰한 분이 좋아해 주는 건물을 지어주고 싶다고 보통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직업으로서도 성립하지 않고, 이런 집을 인수하고 싶지않다라고 하시면 큰일이고요.

자기 집을 설계하는 것과 타인의 집을 설계하는 것은 역시 전혀 다릅니까 세대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服部:그렇군요. 

타인의 집을 건축할 때는 어떤 의미로는 요구가 확실하니까 그것을 만족시키면 된다라는...근데, 이즈미상의 자택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자신(건축주)의 요구 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요구도 그렇고, 무엇보다 지금가지 같이 일해 온 장인 동료들의 눈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되지 않습니까.(이즈미상의 경우에는).

이즈미상 만의 예술이랄까, 건축가로서의 예술은, 장인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추구되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즈미상의 자택에서는 (특히) 장인정신과 같은 것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으셨습니까?    

泉:그런 것은 있었습니다.

服部:장식으로서의 공간, 장식으로서의 보여지는 방법 같은 것을 매우 소중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즈미상 자택은 장식성을 절제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왜 일까"라고 생각해 보니, 그것은 건축주에 대한 이즈미상의 서비스 정신이었지 않습니까. 건축주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집을 위해서는 그렇게 (죽을 듯이)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지. 와 같은.. 

泉:오호.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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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넘어서 처음으로 건축소년이 되다.

服部:이즈미상은 각지에서 수집해 온 아이디어나 공간의 작법을 자신의 작품에 투입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예를들어, 이즈미코우스케건축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면  『잡동사니 보물 박물관(お宝ガラクタミュージアム)』이라는 메뉴가 있어, 「한국의 바구니(韓国のカゴ)」「성게껍질(ウニの殻)」「인도 쟁반(インドのトレー)」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바구니. 홈페이지.

이 보물들은, 건축의 근대화로 인해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잃어버린 일종의 보캐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즈미상의 작품 중에는 집합주택 타이잔칸(泰山館)이 그렇지만 , 전(塼)을 쌓아 올린다던가, 목재의 접합부라던가,  아무렇지도 않 듯 전통건축에서 축척되어 온 보캐뷸러리를 수집해 자신의 작품에 투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이잔칸

泉:타이잔칸 때는 특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몇년 전 타이라케이치(平良敬一)상(『주택건축(住宅建築)』 편집장)에게 "이즈미, 대단히 세련되어졌네."라고 말을 들었습니다. 


뒤늦게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는 모더니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건축이란 신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건축의 장식이라든가 소재감이라는 것은, 공간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장식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50세 전후가 되면서 부터, 처음으로 건축잡지라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50세가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건축소년이 되었다.

그 후로 부터 꽤 바뀌게 되었습니다.  


服部:현재의 작품과 1990년에 완성한 타이잔칸(泰山館、집합주택)을 비교해 볼께요. 

뭔가 좋은 보캐뷸러리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한다면,  버내큘러(vernaculer)라는 것은 타이잔칸 시대의 보캐뷸러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泉:타이잔칸의 형태 및 모티브로서의 버내큘러였습니다. 단, 지금은 좀 더 기하학적인 소재를 조합하고 있습니다.  


2015/10/24 - [etc/book] - 현대건축의 컨텍스츄얼리즘(現代建築のコンテクスチュアリズム入門)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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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스케일」도면, 「1/1 스케일」도면의 중요성.

服部:다시 주택설계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즈미상은 도면을 엄청 많이 그리기로 유명합니다. 그렇지요?


그럼으로써 비로서 건축이 시작되는 것이고, 완성되는 작품도 도면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구요.

泉: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1/100스케일이나, 1/200스케일로 그린 그림은, 집이 그 모습 그대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역시 스케일을 1/5이라든가, 경우에 따라서는 일대일로 그리지 않으면 좀처럼 좋은 결과를 볼 수가 없습니다.


服部:설계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면도만 완성해 놓으면 된다던가, 1/100로만 그러놓으면 그걸로 끝이다라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를 보면 그런 식으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泉:그런 식으로 되고 있다」라는 것은, 대학에서의 교육을 말씀하시는것인지요? 대학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는 말씀드린 것(상세 스케일)을 가르칠 수 있는 교원이 드물다는 것이겠지요. 

服部:드물다기 보다는 없지 않습니까.

泉:네. 그렇지요.

아마도 없을겁니다. 건축은 물건을 만든다(モノづくり)라는 아주 기본적인 정의가 소홀히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것에는 여의치 않고 (일반인에게 전문가에게) 호평받는 작품은 재미있는 아이디어 때문이라고 봅니다.  


服部:그렇군요. 대학교육을, 좀 더 예리하게 비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泉:교수님(치바대학)이 비판해 주세요.(웃음)

보통  " 무엇 무엇을 설계해라."라고 과제가 나오지요.(이즈미상은 니혼대학)

그리고 그 후에는 대개 1/100로 그린 학생의 도면을 기본으로 몇 번 에스키스를 하고, 마지막에는 서로 모여서 작품 평가(講評会)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스타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걸로 학생은 무엇을 배웠을까요? 학생 한명 한명을 정성껏 에스키스를 해줬다 하더라도, 모노즈쿠리(モノづくり)로서의 건축설계의 거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지도하고 있는 것은 플랜이라던가지요.


(내가 한국에서 학부에 다닐 때는 개념이 중요하느니, 지극히 교수 개인적인 선호에 불과한 비례가 어떻다느니, 이렇게 하는게 재밌지 않아? 라는 허무한 지도를 하면서 남의 도면에 찍찍 그어대는 에스키스를 허구한 날 받았다.)


이런 것은 건축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요.

그래서 관념적인 건축을 그려내는 학생만이 득실득실 넘쳐흐르고 있지요.  


(CG로 영어로 덕지덕지 설명하면서. 이건 물론 내생각이지만, 나 역시 학생 때는 간단한 설명이나 작품 주제 조차 왠지 영어로 쓰고 싶어했고, 심지어는 평면도 단면도 등의 도면명 조차 Plan이라든가 Section이라든가 쓰는 것이 판넬이 더 멋져 보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건축에는 당연히 빛도 있고, 사용하면서의 지혜(使い勝手),  소재도 있고, 구법(構法)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하나 하나 차근차근 배워가고, 가르쳐 나가는 스타일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服部:테크노로지컬 어프로치라는 용어가 있지요.

분명히 마에카와 쿠니오(前川国男)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공자에게 맡기기만 하면 된다. 라는 풍조가 됐다는 느낌입니다.


2016/02/20 - [논문보다가치있는일본예능/고독한미식가] - 고독한 미식가 에피소드 03-08 우구이스다니역 부근 鶯谷駅 付近(Uguisudani Sta.)


마에가와 쿠니오 전시장에서


泉:물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떠한 건축을 만들것이가. 라는 것과 어떻게 건축을 만들 것인가. 이 두가지 관점 중 전자만이 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화는 전자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후자 속에서 발생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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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작가 오노죠(小野襄)


服部:니혼대학 생산공학부에서 배우신걸로 아는데, 지도교수님은 누구셨습니까?

泉:오노죠 교수님이셨습니다.

오노 교수님은 건축작가라기 보다는 조형작가입니다.

조형작가로 건축학과의 전임교수로서 연구실을 갖게 되신건 일본에서는 교수님 뿐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형 수업은, 교수님께서 고안하신 ONOJIN이라는 베이직 디자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연습이 주였습니다.

服部:꽤 유니크하군요.

泉:오노 연구실에서는, 건축벽면의 조형 등은 했었지만, 건축 그 자체는 전혀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건축하는 놈은 멍청이」와 같은 분위기가 있기도 했고, 실제로 제가 그런 취급을 받았었습니다.(웃음)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 것인가라는 센스는 습득했습니다.


예를들면, 에폭시수지에 동가루를 섞어, 조형작품을 만든다고 하자구요.

처음으로 수지점토로 모델을 만들고, 그것으로 본을 뜨는데, 형태가 목잡해서 본을 뜨는데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일의 순서입니다.

작업에 필요한 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재료의 양을 견적해서 수배를 하고, 필요한 공구를 모읍니다. 또한, 수지의 경화에는 온도가 관계하므로, 작업중의 온도관리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모노즈쿠리라는 것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세계입니다.


저는 건축 설계를 시작했을 때는, "건축 설계라는 건 이상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건축가가 모습(格好)만 생각해 내면, 시공자가 어떻게 하든 만들어 주는, 즉, 건축가각 어떻게 해서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그런 세계로 보였습니다.

(내가 학부 때 숱하게 듣던 소리가 이런 소리였다. 구조는 너무 이르니까 생각하지말고 어떤 모습이든 하여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까 설계하라고. 

일견 보기에는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하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그런 교육방법을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한가지 음식만 편식하는 교육을 받았었다.)  

그러나, 깊은 맛이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 두지 않으면 (사상누각과 같은) 깊이가 없고 빈약한 결과물이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시공자 일임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 때, "어떻한 건축을 만들 것인가"라는 것과 "어떻게 해서 건축을 만들 것인가" 는, 일체화해서 생각해야 하는 테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건축을 만들 것인가"라는 테마를 추구할 때, 오노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이 그 후의 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服部:대학을 졸업한 후, 어떤 분의 설계사무실에서 공부하셨습니까.

泉:아뜨리에R(アトリエR)의 사이토 타다시(斎藤義)상에게 배웠습니다.

사이토상은 키쿠다케 키요노리(菊竹清訓)상의 제자로, 당시 『신건축(新建築)』이나『도시주택(都市住宅)』 등에 주택을 중심으로 자주 발표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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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과 집합주택을 대하는 마음가짐.

服部:이즈미상의 작품세계는 크게 단독주택과 집합주택으로 나뉘 수 있다고 보는데요, 단독주택과 집합주택에서 「마음가짐(접근방법,心構え)」가 다르다고 한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泉:막 독립했을 때는, 단독주택이 중심이었고, 그것도 소규모 주택의 의뢰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택을 설계할 수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집합주택 설계 의뢰가 난데없이 날아들었지요. 집합주택은 단독주택에 비해서, 수입성 계산 등을 해야하는 부자유스런 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거기에 사는 건축주가 없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자유롭기도 합니다.

服部:단독주택 설계에서는 건축주를 의식할 필요가 있지만, 집합주택 설계에서는 살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일임되는 부분이 많게된다. 라는 것인가요. 

泉:네.

단독주택 설계는 즐거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반면에 건축주의 생각에 만족시켜 줘야 한다는 부담도 상당합니다.

누구라도, 옷이나 모자, 신발 등을 자기 마음대로 코디해서 착용하는 것과 같이, 개인주택의 건축주는 기본적으로는 주택도 그렇게 하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대로 짓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그걸 건축가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지요.

그것에 반하여, 집합주택에서는 건축주가 전체를 구상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꽤 건축가에게 일임을 합니다. 그런 것이 (어떤 면에서는) 편하지요.


무엇보다, 군(群)으로서의 조형이나 커뮤니티 형성 등은, 단독주택에서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단독주택 이외의 것을 설계 한다해도, 기본적인 자세는 단독주택이 기본으로 되어있습니다.

일본대학 시민강좌 중

단독주택 설계에는 자잘하고 세세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집합주택에서도 단독주택의 연장선과 같은 생각으로 세세하게 설계하고, 그것이 제 집합주택의 특색을 만들어내는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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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

服部:단독주택에는, 건축주의 에고(ego)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테마가 있습니다.

한편, 집합주택에서는 커뮤니티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테마가 있습니다.

이즈미상은, 내부 정원에 연못을 만든다는지, 벤치를 둔다든지 해서, 입주자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즈미상 자신이 벤치에 앉아서 한 잔 하신다는 소문도 있습니다.(웃음)

泉:정기점검 후에, 잠시 쉬고 있었을 뿐입니다.(웃음)

服部:디자이너스 주택, 디자이너스 집합주택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Designer's Mansion. 미디어 등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것이 분양시 등에 주요한 홍보수단인 집합주택이나 단독주택.)

그 중에서, 이즈미상의 작품은 눈에 띄게 인기가 있어서, 입주희망자 대기가 일상 이어서, 빈 방이 생기면 바로 채워진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즈미상의 집합주택에는 외부공간(정원)에도 내부공간에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것은 집합주택을 단독주택의 모음이라고 할까, 집락으로서 보고 설계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泉: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쥰.

服部:지금까지 집합주택을 10건 정도 하고 계신데요. 완성 후, 정기점검 이라든가, 거주상태 조사라는가 라는 연구를 해보셨는지요.  

泉:정기점검, 거주상태 조사 앙케이트 비슷한 것은 해보았지만, 그것 뿐안이 아니라 건축주와 사이가 좋다면, 가금 놀러가기도 하곤 합니다.

그런 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거고요.

수치화(정량적인 방법) 하여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잘 알 수없는 것이 매우 많다고 봅니다.

服部:단독주택보다, 집합주택 쪽이 이떤 의미에서는 사회성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집합주택에서는 분양과 임대가 있습니다만, 이즈미상은 임대만 의뢰받았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요.  

泉:오늘날, 분양은 자본의 다른 표현이 되기 쉽습니다. 근본은 거기에 있습니다. 가능한 한 자본과는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임대 밖에 하고 있지 않는 것이구요. 


2016/05/20 - [일본의도시주거/日本の都市住宅/1990年代] - 타이잔칸(泰山館, Taizankan), 이즈미 코우스케(泉幸甫 Izumi Kousuke), 1990 1차답사

2016/05/21 - [일본의도시주거/日本の都市住宅/1990年代] - Apartment 덴(Apartment 傳, DEN), 이즈미 코우스케(泉幸甫 Izumi Kousuke), 1998 1차답사

2016/05/21 - [일본의도시주거/日本の都市住宅/2000年代] - Apartment 쥰(Apartment 鶉, JUN), 이즈미 코우스케(泉幸甫 Izumi Kousuke), 2002 1차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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