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현대 일본 건축 (주택외)/기타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던 장소가 사라지다 - 히로시마 타카노바시 코세츠 시장(広島タカノ橋こうせつ市場)

by protocooperation 2019. 10. 1.
◆ 타카노바시 코세츠 시장(タカノ橋こうせつ市場)

히로시마시(広島市) 시가지 중심부 나카구(中区)에 위치한 타카노바시 상점가의 한 가운데 위치했던 상점.
2차대전 중 원폭으로 시가지 전체가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 시민들은 암시장(闇市) 등에서 몇배나 되는 가격을 주고 생활필수품등을 구할 수 밖에 없었던데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히로시마시에서 공설시장을 설치한 것이 계기.

설치 이후로 수십년간 지금까지 "서민들의 부엌"이라고 불리우며 사랑을 받아왔던 이 재래시장이 2019년 3월을 마지막으로 폐쇄되면서 방영된 TV프로그램.(NNN다큐멘트 / 2019년 6월 17일 방송 "사라져가는 쇼와의 부엌 - 히로시마 타카노바시코세츠 시장"의 지방TV 재방송이었을듯.)

 

 

타카노바시 코세츠 시장 상점가 중에서 공설시장이 설치되기 전부터 영업을 이어왔던, 가장 고참격인 정육점의 이야기를 메인으로 하면서 시장 폐쇄 뒤에 숨겨진 일반 시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2019년 7월 당시 일본여행 중 호텔에서 보게되었는데, 내가 살던 동네의 재래시장 이야기도 아닌데 넋을 놓고 상점가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보면서 개인적으로 기록하고 싶어 허둥지둥하면서 TV화면을 찍어 놓았었다. 


우측사진의 왼쪽이 종업원 분. 오른쪽이 사장님.

창업 100년이 넘는 정육점의 사장님(오른쪽)과 사장님과 같이 늙어가신 종업원 분(왼쪽).
창업 100년이 넘었지만, 가게를 이어갈 후계자를 찾기가 좀처럼 어려워, 공설시장 폐쇄를 계기로 가게를 접기로 결심하셨다고.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사진 왼쪽의 종업원 분 연세가 70을 훨씬 넘으셨는데, 처음 가게에서 일을 하게된 때가 고등학교 졸업이후 지금까지였다고..
고등학교 갓 졸업한 가난한 소년을 고용한 이후, 20살 성인식 때에 뒷바라지 해주고, 맞선도 주선해 주시면서 같이 일을 하시면서 지나고 보니 지금까지.

고용인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 동료이자 동반자, 피만 나누지 않은 형제관계가 아닐까..

 

사진을 보면 사장님이 더 젊어 보이는데, 당연한 것이 가업을 물려받은 현재 사장님의 아버님(선대 사장님)의 유언이 종업원을 잘 보살펴주라시는 것이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눈시울이 나면서 미소를 짓게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인물이 될 뿐인 구태의연한 고용관계다...가치를 폄훼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일본 뿐만 이 아니라 현대사회가 잃어버리는 "노동의 가치"와 "사람과 사람의 신뢰관계" 등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였다. 

 

타카노바시 코세츠 시장 내 이상점, 저상점 들을 어슬렁 어슬렁 마실 다니는 길고양이 "하치"와 "포치". 시장이 철거된 후에는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앳된 시절에 일본으로 시집을 온 중국인 사모님. 이후 시장에서 남편분과 함께  생선가게인가 과일가게를 운영해 오셨다. 수십년간 인생을 바쳐 살아오신 시장이 폐쇄되면서 수십년간 이용해 오신 단골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 두 분은 시장이 폐쇄되면 다른 곳에서 가게를 얻어 계속 장사를 할 생각이시라고.
과연 나이드신 손님들이 필요한 상품만 사기 위해서 이 시장에 오셨을까. 마지막으로 단골 손님들과 상점 사장님, 종업원분들과의 작별인사. 그리고 헤어짐.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현대사회가 잃어가는 문화이자 인간관계다. 

 

영업 마지막일 모든 영업을 끝내고 텅 빈 상점가.
그리고 며칠 후에는 철거되었다.

 

내가 걷기 시작할 때 부터 지금까지 살아오고 살고 있는 곳 은평구 응암동에는 대림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는데, 아직 가끔 근처를 가면 옛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어릴 때 코흘리면서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보다가 시장 한가운데 있는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엄마와 같이 먹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 

가벼운 어머니의 지갑은 생각 못하고, 옷가게를 지날 때 티셔츠 하나 사달라고 투정 부리던 기억.

 

중학교 때 성적이 내려갔다고 불같이 화를 내시던 담임 선생님이 사시던 응암동 언덕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백련산을 가리고 서 있다.

 

언제 응암동 전체가 아파트 숲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니 시간있을 때 초등학교 때 등하교 하던 골목길, 시장골목, 연신내 에 살던 친구집을 가던 길을 찍어 놔야겠다.

 

나 개인에게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보다 꼬르뷔제의 계획도시 보다 더 소중한 것이니.